가짜마음..진짜마음... 무진 2010.01.29
첨부화일 : 없음
질문 :

매번 같은 질문에 힘드실 텐데, 친절하시고 자세하신 답변 진심으로 감사를 올립니다!

선생님 염치불문하고 한가지 더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그러면 지금 판단하고 분석하고 분별하고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요놈은
개아입니까 진아입니까?
개아라면 개아(또는 가아)가 개아로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진아라면 완전한 진아가 왜 그렇게 하는지
가르침을 다시 한번 청하는 바입니다.

답변 :

힘이 들지 아니 합니다. 감사합니다 청명님

손가락이 있고
몸이 있고요.
마음이 있고요
본래마음이 있습니다.

손가락과 몸중에서
둘이 다르지 않치만
어느것이 더 근본이냐고 묻는 다면
몸이라고 아마 우리는 이야기 할 듯 합니다.

몸과 마음중에서는
마음 따라서 몸이 움직이니
아마도 마음이 주인이요 몸이 종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마음과 본래마음중에서
누가 주인이요 누가 도구 냐고 묻는다면
아마 진아가 주인이요
개아가 종이라고 하지 않겠어요?

헌데 위에서 보았듯이
개아와 진아가 별개의 두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몸을 떠나서 마음을 알수가 없듯이
마음(개아마음)을 떠나서는 본래마음(진아)란 존재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개아가 진아라는것과도 또 다릅니다.

즉 마음에서 "탐진치"를 다 빼어내거나
또는 마음에서 "개아"를 다 빼어내면
그서이 본래마음이며 진아 입니다.
허니 마음과 다르다고 할수도 없으며 마음과 같다고도 할수가 없겠지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청정도론에서 하십니다.
즉 몸과 마음은 "무아"이다.
헌데 고통을 벗어나고 열반할수 있는 "무엇"이 이것( 몸과 마음)안에 존재한다고 선포한다.
라고 하십니다.
몸과마음이 "나"가 아니라면서, 또 그안에 존재한다는 말이 모순 같지 않은지요?
즉 마음에서 탐진치 개아 다 빼어내어 버리면
불교에서 말하는 무루"無淚"가 될겁니다.
더이상 흘릴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또는 무여열반 할때 무여(무여)라고도 합니다.
남은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즉 마음에서 더이상 흘릴것도 빼어낼것도 없이 남김 없이 빼어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반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므로 중생이 부처라고 흔히 이야기 하는데
중생은 마음에서 스스로 "개아"라고 믿기 때문에 중생일 뿐이지요.
허나 누군가 아 그렇구나 하고 나는 이제 부터 "부처님"이다 하여도 소용 없을 듯 합니다.
중생이 마음에서 탐진치를 다 빼어내고 개아라고 믿는 것을 다 빼어내면은
그제서야 스스로 여실히 부처님임을 알고 보고 될 듯 하군요.
허나 스스로 개아가 아니라고 믿는 다는 것은
탐도 없고 진도 없고 치도 없을때만 스스로 그러함을 알고 되겠지요.

자 돌아 오겠습니다.
컵을 들어 올려서 마시는 주체는 분명 "손"입니다.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팔"입니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은 "몸"입니다.
"몸"을 들어 올리게 하는 것은 바로 "기"입니다.
"기"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허나 그 마음의 바탕에는 바로 "본래마음"이 있습니다.

허나 "손"이 스스로 생각이 있어서
"팔"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을 모른다면
컵을 움직이는 주체는 "손"이 됩니다.
이와같이 마음이 스스로의 바탕을 모른다면
판단하고 분별하고 느끼는 그것은 그냥 "개아"에 불과 합니다.

또한 진아는 오롯한 "혜" 또는 깨어있음 입니다.
그러할때 세상에서의 쓰이는 마음인 개아는 "지혜"입니다.
즉 본래마음은 개아로서는 "행위자가 없는"입니다.
전체자이기 때문이지요.
마음은 "행위"가 됩니다.
더하게 되면 "행위자 없는 행위"가 됩니다.

위의 말이 어렵다면
도덕경(노자)를 보시면 됩니다.
도 즉 진아가 된자는
세상에서 마음을 "덕"으로 쓴다는 이야깁니다.
불교식으로는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지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이 일어난다.
즉 그러하게 세상일에 집착이나 저항없이 일어나는대로 쓰게된다는 겁니다.
무엇을? 마음을요
우리는 지식으로 마음을 씁니다. 그러할때 무엇에건 집착이나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판단분별, 분석, 느낌이라면 그것은 분명 개아 입니다.
허나 아무러한 집착과 저항이 없는 분별 분석 느낌이라면
그것은 진아가 세상에 나투어서 쓰게 되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진아는 묘심이요
진아의 세상살이는 묘행이 됩니다.
즉 도와 덕이 되지요.

헌데 우리는 묘심도 갖추었는데
스스로 개아라고 여기기 때문에 묘행(따스한 소풍)이 되지 아니하고
보물찾기에 지치고 번뇌가 생기는 소풍이 되지요.

진아는 그저 깨어있으면서
그러하게 개아라고 우기면서 사는 모습을 지켜볼 뿐입니다.
자비와 연민으로 말이지요.
물론 자비와 연민으로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 깨어나보면 진아에는 "자비도 연민"도 없습니다.
그러한 감정 느낌 전혀없이
그저 "깨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깨어있음"이 결국 말로는 할수 없는 자비와 연민입니다.
그것에 의하여 "개아"가 알든 모르든 결국에는
본성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유의지 주신것은
하나님과 똑같이 아들들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이겠지요.
그리고서는 말로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권유할수는 있겠지만
만약 아담이 따먹는 순간 그것을 막는다면
그것이 무슨 "자유의지"이겠나요?
진아는 개아에게 무한한 자유의지를 이미 나투어서 준것과 다르지 아니합니다.
허나 개아가 그러한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한다면
진아는 그저 자비와 연민으로 돌아올날을 "깨어있음"으로 지켜보면서
기다릴 밖에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고통과 번뇌를 받는 원죄를 겪다가
어느날 그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순간
모든 고통 사라지고 천국에 들듯이

우리는 이러한 고통과 번뇌를 짓고나서는
결국 악에서 선을 선택하게 되고
그 둘을 모두 버린 지선을 선택하게 되고
결국 일심을 선택하며
또한 나아가 무심을 선택하였을때

오! 하나님 맙소사
내가 본성이었단 말인가?
내가 전체였단 말인가!
하고 견성하고서는
드디어 나머지 이럴까 저럴까 하는 마음도 싹 내다 버리고,
또는 종래에 모든 의도와 작위마저 버리고는
전체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오늘 날은 비기운으로 인하여 어두운듯 하군요.
허나 참으로 청명합니다.
청명하신 님께
순일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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