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과대승★추가 돌도사 2014.05.13
첨부화일 : 없음
요새 많은 승려나 일반인들까지 미얀마에 가서 <위빠사나>를 배워와서 포교하는 것을 본다.선방에서도 위파사나, 수식관 수행법을 가르치는곳도 많아지고 있다함<위빠사나> 내용이 전부 12연기법인것으로 안다. 이런것으로 미루어 보면 남방불교는 화엄경이나 금강경 같은 대승경전의 주류가 아님을 알수있다.

지금 인도에서도 불교가 부흥하고 있는데 전부 위빠사나 같은, 명상센터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다고 함
인도에 "오쇼 라즈니쉬의 아쉬람(명상 센터)에서도 불교의 선(젠)과 상좌부의 위빠사나가 행해지고 있다. 불교가 아직은 소수종교에 지나지 않지만, 앞으로 부흥할 소지는 너무나 많다." 등...,
중국도 이젠 어차피 불교 세계화 추세를 따라 갈려면 이런 남방불교를 배워야 할것 가토. 하기야 문화 혁명때 중국불교는 없어지고 외국에서 도입 한것이겠지만..,
위빠사나에서 앞으로 중국 6조혜능이후선종 같이 많은 도인이 나올것가토 ..,
그런데 중국 선종은 6조이후에 도인이 깨쏟아지듯 나왔다는데 남방불교는 내가 알지 못해서인지 도통한 사람들의 계보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방불교에는 소승, 대승차이는 없고, 소승, 대승의 차이는 "無我"인냐, 아닌냐가 차이에 있다"는것이다.
하기야 요새 불교학승들 대부분 남방불교 사상을 배우고 인터넷에봐도 대승이라고 말만 나오면, 대승은 가짜야! 대승비불설이니 대승경전은 중국에서 만들어낸 위경이라하고, 남방불교가 진짜전통그대로 내려온 첨가되지 않는, 진짜 불교라고 주장하니 뭐라고 말 할수 있을까

" 남방불교는 "중국 6조혜능에서 시작된 화두선에 대해서는 중국 도교 수행법이 혼합된 가짜이며,석가모니는 화두를 들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즉 간화선은 불교가아닌 도교 수행법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근본 불교에서는 오직 석가모니의 가르침마니 불설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이외에도 깨달은 선지식은 모두 부처이므로 석모니의 친설이 아닌 경전도 모두불설이다.
소승불교 수행법은 대부분 수식관,위파사나 위주이다.석가모니가 어떤 방식으로 선정을 닦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승불교에서 흔히 하는 화두선은 아니라는게 정설이다.
근본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는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분 뿐이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는 석가모니 중심으로하되 과거 무량세계의 모든 부처님 깨달은 모든 선지식,모든보살도 부처다
위파사나는 화두는 안 들지만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는호흡법 수식관 역시 단전에 들어가고 나오고하는호흡법, 의식집중 그기에 숫자를 세는 방식이다.
소승불교에서 간화선이 사이비 도교의 수행법에 가깝다고 비난하지만 호흡의 기본적이 틀은 모두 비슷하다"( 이상 복사)

대승경전의 위경을 뭐하로 배운디여 ...,
원래 대승이라는 말이 없다내, 근본불교, 상좌부 이런말을 사용해야 한다내,대승이라는 말은 상대를 낮추어 부르는 말에서 생겨난 것이라내, 불경에 코끼리수레, 사슴수레, 양의수레가 나온 말은 차등이 없다는말인가? <대승기신론>의 대승뜻을 뭐하로 설명해놓은것인고? 경에 처처에 三乘이 나오고 처처의 경에도 부처님 말씀에 " 저 二乘 등이 알거나 보는바가 아니기때문이다" "부처님도 二승들은 볼수있는 안목이 안된다" 이런말이 나온다. 말세가 되니 온통 헛갈리는 말만 나온다. 돈오가 옳다니, 돈수가 옳다더니, 더 나아가서 대승비불설이니, 헛갈리는 말 뿐이고 이런말 저런말 다 듣다보니 내 맘까지 방황하게 된다. 천진한 생각으로 한마디 말만 굳게 믿고 신심많았던 과거가, 일시에 무너지는 느낌,수행하려던 신심이 없어지고 이게 옳은말인가 저게 옳은말인가. 한마디로 문자와 경전은 신심의 원적이다
불교 세계화한다는데,배운바도 없으니 나혼자만 외계인가토
禪의 전통은 부처가 연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알아 차리고 미소를 지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것을 이심전심 교외별전이라한다.팔만대장경이 달 가르치는손가락에 불과 한것이다.달은 안보고 맨날 손가락에 집착하니 나처럼 이게 옳은가 저게 옳은 방황하게 되는것이다. 6조혜능 무식한 나무꾼이였다 하며, "응당 이 마음이 머무는 바 없이 그 맘을 내어라"하는 탁발승의 염불소리에 깨달았다. 그래서 5조홍인에 찾아가서 인가받고 금강경을 강의를 전수 받고, 밤에 탈출하게 된다.금강이 범어로 霹靂인지, 다이아몬드인지 알바 없는것이다, 글자보다 달만 볼줄 알면 되는 것이다.구마라습이 벽력으로 번역 안하고 왜 금강으로 번역했을까? 글의 문맥상 뜻이 통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깨달음을 위한 선종은 교학을 배우면 나처럼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이심전심 교외별전 직지인심 불입문자 견성성불, 이것은 心是佛, 즉 문자에 의지하지말고, 손까락 보지말고 달을보라는것이다.


(★★나의 잡담 :난 불교경전은 본것이 없고, 문학은 많이 읽은것 가토, 어릴때 읽은건 하나도 기억은 안 나지만
역시 문학이나 소설이 불교 경전보다 나의 신심을 더 돋구어준다.문학이 곧 팔만대장경인 것이다. 어떤 소설,폭풍같은 삶의 추억들 어떤 소설은 읽어면서 함께 펑펑 울기도 했던 지난일 옛날에 어떤 소설엔 두 젊은 부부가 숟가락 2개만 가지고 산속에 들어가 파전 일구며 고사리 케서 팔고 씨앗 사고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요새는 도시형이라 이런 소설은 전혀 볼수 없지만, 문학은 수정거울과 같다 인생을 재 조명하며 타인의 삶을 내가 간접 경험 해보는 것이다.
한참 소설 같은거 심취 했을때 현실이 현실이 아니고 소설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현실에 밀착된 삶이 손에 안잡히고 소설의 환상의 아름다운 무지게꿈속처럼 붕 떠있는 기분이었다 )


저 경에 문수보살의 지혜신통보다 부족한 어떤 한 여인이 삼매에 든것을 문수보살이 그 여인의삼매를 깨우기 위해서 삼천대천세계를 흔들고 진동시켜도 깨우지는 못하였다. 부처님이추천한 문수보살에 한참 아래인 또다른 어느 한 여인이 잠깐 손까락 한번 퉁기는사이에 비로소 삼매에 깨어나온것이다. 다 임자가 있고, 인연이 있어야 삼매에 일어 나게 할수 있는 것 같이 모든것이 자기보다 못하다는,내가 최고다 하는 생각은 좀 그렇고 그렇다. 문수가 어찌 초라한 여인보다 지혜신통이 부족해서 어찌 그러 하였겠는가? 우리가 문수보살을 통칭하기를 여래의 장자라고하는데, 문수보살도 부족하고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것이다.



규봉종밀은 <都序>에 소승은 "我空" 즉 내가 無我인것 까지는 체득하지만, "法空" 즉 나의대상인 현상계의 공함을 체득하지 못하였다 하였고,또 여러 경전이나 어록에 본것 같다.

경은 깨달은 후에 보아야 보살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리 공론에 남의 이야기 말만옳으니 그러니 하고 말 것이다.하기야 일단 배워 놓으면 산넘어 연기를 보고 불이 있다는 믿음처럼 믿음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깨달은후에야 약간 조금 실행 실습 할 수있는 능력이 있고 초입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무아삼매를 체득 한 사람마니 가리왕의 할절 신체하여도 무아상, 무인상을 능수 능행하는 것처럼, 가능 한 일일 것 같다. "무아 "무심" 같은 말은 소승경전에도 많이 있을것이다
화엄경에왈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속에 들어가서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 세계에 지나서 한 선지식을 친견한다" 했는데 다 꿈같은 이야기들 뿐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 남방 소승경전이나 좀더 연구하는 것이 옳을 듯 하오

★ 언제는 금강경을 강의하신다고 열심히 시더니 또 시국선언한다고 열심히시군요. 참 열심히 사시네요! 금강경이 무아의 도리가 원래 유아의 도리이지요 금강경 마니 배우면 유아사상을 쉽게 이루지요? 역시 부처가 세상에 나오실때 일수지천, 일수지지 왈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로다 이것이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지요. 이것 역시 철저한 유아사상이지요? 역시 부처는 금강경의 무아사상을 말 하는 것 같지만, 유아사상이아니겠오? 운문은 이것을 일직이 그릇됨을 간파 했지만,역시 선생과 똑 같은 유아사상을 포장한 무아사상이므로, 금강경을 유독 좋아하시는것같소! 역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로다!


★★(아래에는 남방불교 윗빠사나를 복사한것이다 윗빠사나 소개 글 양이 엄청나게 많지만 순서 없이 복사 했다 여기에 "무아"사상이 있다)

3. 위빠사나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것이 위빠사나입니다.

위빠사나는 다른 말로 통찰 또는 지혜라고 합니다.

행동을 다스리는 규범(戒), 마음을 안정시키는 집중(定)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통찰하는 지혜(慧)는 생겨납니다.

올바른 행동 규범과 마음집중은 지혜와 함께 익혀야할 세 가지 덕목(三學)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은 다섯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수행법과 이 방법을 가르쳐 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진지함, 솔직함은 세 번 째 조건이며,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네 번째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하고(無常), 편치 않으며(苦), 이러한 몸과 마음에는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는 없다(無我)는 지혜를 스스로 얻어야 합니다.

믿음, 건강, 진지함, 노력, 지혜를 갖출 때, 위빠사나 수행자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수행입니다.

집중적인 수행을 통해 익힌 이러한 수행법은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종교나 사상을 넘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 수행은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지혜와 함께 자애(慈愛)도 중시합니다.

지혜와 자비로 대표되는 불교의 두 덕목은 불교 수행의 두 날개입니다.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어 나가는 행복한 마음은 반드시 주변에 좋은 파장을 보낼 것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자비는 함께 갖추어나가는 덕목이어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내면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스스로 행복하고, 남에게도 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윤창화 changhwa9@hanmai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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